온라인 전시
민주 대만의 가두시위 운동 – 장화 평원의 이름없는 영웅들

1980년대부터 2000년 대만이 첫 정권교체를 이루기 전까지 거의 20여 년 동안, 대만의 가두시위 운동은 폭풍처럼 거세게 일어났다. 기층 사회 출신의 많은 민초들이 기꺼이 민주 개혁 운동을 위해 뛰어들어 민주, 자유 그리고 공정과 의리를 추구하기 위해 독재와 권위주의에 용감히 맞섰다. 설령 대만 경비총사령부와 정보 기관 요원들이 말로 협박해도, 경찰과 민중이 대치하는 거리에서 바리케이드가 막아서도, 물대포를 쏘아대며 쫓아도, 심지어 진압경찰이 피를 흘리도록 때리고,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열정, 용기 그리고 개인의 사사로움까지 버린 이들 ‘이름없는 영웅’로 대만 민주화는 완벽한 퍼즐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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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年、煙霧與傘——香港反送中運動版畫紀事

為能再次喚醒大眾對香港人權問題的注意,持續聲援香港反送中運動,邀請創作版畫的馬來西亞籍藝術家李迪權先生,展出反送中運動相關系列版畫作品,集結百餘張紀錄反送中運動與抗爭的近身觀察創作,除讓世人了解香港處境,也希望喚起生活在民主台灣的民眾關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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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地傷痕:二二八事件遺址——北部地區
第三篇:島嶼輓歌

1947年3月8日,從中國前來臺灣的軍隊整編二十一師分別於基隆港和高雄港登陸,行政長官公署下令解散處理委員會,各縣市曾參與處理委員會分會議論時政的成員與群眾,紛紛成為逮捕及清算的對象;在軍警策劃戒嚴,部署軍隊執行綏靖與清鄉之下,許多民眾也不能倖免於軍警無差別的屠殺與劫掠。二二八事件從協商溝通的希望中破滅,走向了國民政府武力鎮壓的局面,並在島嶼遺留下慘痛記憶的屠殺處與槍決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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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展|他們的年代 史蹟穿越

1930年代,是二二八受難前輩們積極活躍地追尋、創造台灣政治、文化與藝術前景的美好時代!
時為日治後期,台灣正由農業轉向工業的蛻變期,經濟的活躍使收入增加,政治上要求參與和自主,電燈、電話、自來水等文明的產物相繼普及於一般生活,西式教育的公學校普遍設立,西方的娛樂如電影、留聲機與唱片等也在那時被引進台灣,促使新興的都市流行文化逐漸形成,這是一個文化蓬勃萌發,人民享受並嚮往著新興文明的「跳舞時代」,正由於前輩們接受過這樣的文明與文化洗禮,才會無法接受其後國民黨的腐敗政權,甚至起而對抗,以致這樣的文化脈流,從此遭遇二二八慘案及其後政治迫害之漫長的斲傷。
誠摯邀請您前來二二八國家紀念館,乘著古典悠揚的音符,與新媒體藝術手法創造的時光「任意門」,回到1930,探索那個充滿可能性與創造能量而令人驚艷的年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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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生音樂節9th:在場證明

第九屆共生音樂節的主標語「在場證明」,是要提醒所有尚在這塊土地上生活的人們:我們依然需要記得二二八,因為我們都還正見證它留下的創傷與鉅變。受難者遺族的創傷還在等待正義、事件後從此噤聲的文化尚未被尋回,還有未解的認同歧異與威權遺緒——在這個時刻的臺灣,我們放眼未來的進步,卻也不能忘記,記得歷史,並且面對它所留下的挑戰,正是確保民主能成為社會根基的最積極行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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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二八與校園:事件中的建國中學

建校逾120年的建中,見證過日治時期、二戰末期的臺北大空襲、國民政府來臺接收的重建時期,也經歷過獨裁威權統治、人民沒有言論自由的戒嚴時期,直至臺灣邁向民主化之前,歷經不同世代的建中校園,總是有師生挺身而出,秉持良知,勇於挑戰不公不義,卻因此惹來囹圄之災、殺身之禍,甚至還有校長為了保釋學生,竟遭警備總部拘禁數月的荒謬之事。逮捕、失蹤、刑求及槍殺,這些學生與師長的遭遇,二二八與建中、臺灣近代民主發展歷程上,烙下深刻的足跡,瞭解他們的遭遇,才深知轉型正義的重要,及建中校門那尊「入口意象」去留的爭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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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전시
「토지의 상처: 228사건유적지-북부지역」특별전
2단계 전시: 총소리 이후

3월 1일, 민의대표들은 불법담배단속 유혈살인사건 조사위원회를 소집하였고, 3월2일에는 228사건처리위원회(二二八事件處理委員會)로 개편하고 중산당(中山堂)에서 총회를 열어 각 방면의 대표를 포용함으로 사건이 원만하게 마무리 짓게 되기를 기대했다. 4일에 전 성省 17개 현시 처리위원회를 조직하여 통지함으로, 사건 처리의 후속조치가 낙관적으로 전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각지에 처리위원회가 성립되는 것과 동시에 천이(陳儀)는 장제스에게 전보를 쳐서 대륙에서의 파병을 요청했다. 천이는 중앙정부에 병력을 요청하면서 섬내에서도 병력을 이동시켰지만 대외적으로는 군사진압은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 하지만 사건은 더 이상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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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地傷痕:二二八事件遺址——北部地區
第二篇:槍響之後

1947年3月1日,民意代表召開緝煙血案處理委員會,並於3月2日改組為二二八事件處理委員會,在中山堂召開大會,納入各方代表,希望讓事件圓滿落幕。4日通知十七縣市組織處理委員會,事件處理的後續發展似乎轉趨樂觀。然而就在各地處理委員會成立的同時,陳儀電請蔣介石從中國派兵支援。陳儀一面向中央請兵,一面調動島內兵力,卻對外宣稱不會進行軍事鎮壓,使事件走向無法和平落幕的方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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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전시
「토지의 상처: 228사건유적지-북부지역」특별전
1단계 전시: 심야 소란

1단계 전시에서는 전쟁 후 초기 타이완 즉 1947년2월 사건 발생지-타이베이 천마 다방 불법담배 단속 유혈사건에서부터 같은 해 3월1일 임시 계엄까지의 상황을 서술의 주축으로 삼았다. 2단계 전시에서는 타이베이시 서쪽, 단수이강淡水河 이남의 타이완 북서부 현시에서 타이베이에서 발생한 사건 소식을 접한 뒤 각지의 시민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했는지, 집회와 토론 상황은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3월8일 ‘남경정부 군대’가 상륙 후 각지에서 유화정책과 지방을 소탕한 정황들을 서술한다. 마지막 3단계 전시에서는 사건 발생 기간 타이베이 북동부와 타이완 동부 이란宜蘭,화리엔花蓮 지방 민.관의 상호관계. 특히 지룽항基隆港에서 육군 재편성된 제21사단이 상륙한 후 무차별 사격과 총살로 시민 사상자가 발생한 역사를 보여주게 된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이번에 전시되는 유적지의 범위는 타이베이臺北, 지룽基隆, 타오위안桃園, 신주新竹, 먀오리苗栗 그리고 동 타이완의 이란宜蘭, 화리엔花蓮 등의 현시縣市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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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地傷痕:二二八事件遺址——北部地區
第一篇:午夜喧囂

1945年10月25日,臺灣作為戰敗國日本的殖民地,統治權力由日本轉移到國民政府,許多人期待這個不同於日本且又陌生的「祖國」,可以帶給臺灣人新希望。然而,受過日本現代化統治的臺灣人,逐漸驚覺新政權——國民政府的統治失當、貪污腐敗,以及公權力的濫用,使人們不滿的氛圍漸漸高漲。

1947年2月27日,查緝私煙不當反誤傷人命,引爆人民積壓已久的不滿情緒。大稻埕的衝突擴大到次日行政長官公署前的衛兵朝群眾開槍,倉皇逃竄到廣播電台的民眾透過廣播「全島放送」,將長官公署前血腥鎮壓的消息散布全臺,使人民對於國民政府的不滿全面爆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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