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났습니다
228 이후 - 신세대들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發佈日期:2019-11-18

전람 기간: 2019.12.7(토) - 2020. 5.17(일)
개관 시간: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휴관일: 매주 월요일(단, 월요일이 국정공휴일일 경우 그 다음날 휴관), 춘절기간, 정부 공고 자연재해 휴무일, 본관에서 별도로 정하여 공고한 휴무일.
지원기관/内政部
주최기관/二二八事件紀念基金会、二二八国家紀念館
주관기관/宜東文化創意有限公司


1947년 타이베이 천마다방 앞에서 일어난 불법담배매매 단속원 충돌사태는 228사건의 도화선으로 작용하였고, 타이완 사회의 수많은 엘리트들이 이 사건으로 인해 수난을 겪었으며, 또한 많은 무고한 민중의 생명과 신체, 자유와 재산이 침해를 당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망하면서 타이완에 대해 38년 동안이나 계엄을 실시하여 타이완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계엄이라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228사건은 거론될 수 없는 금기여서 수많은 타이완인은 이 섬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근년 이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널리 보급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체제 이외의 당시 사회 의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228을 주제로 하여 이 땅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묘사하며, 서술의 시각도 민주의 흐름에 따라 차이를 보였는데, 이는 228사건에 대한 세대간의 인식이 다르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며, 이러한 차이점을 통해 상호간의 대화의 문을 열어 우리의 228사건과 민주 인권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자 하였다.

 

228이란

228이란 무엇일까? 희생자 가족에게 있어서는 지워지지 않는 아픔, 사회대중에게는 국정공휴일, 재학생들에게는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시험 문제일 수도 있다. 228사건은 1947년에 불법담배매매 검거사태를 발단으로 폭발한 항쟁 사건일 뿐만 아니라 종전 후 천이陳儀정부의 부당한 군·정 조치 및 타이완과 중국이 50년 간 격리되었다가 다시 접촉하면서 유발한 문화적 충돌이기도 한 각가지 요소가 상호 작용하여 드러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국민당군이 무참한 학살을 하고 타이완섬의 엘리트들이 사라진 사실만 보더라도 228사건은 근대 타이완역사의 대참극이라 할 수 있다. 계엄 해제 이후 점차 이 사건에 대한 토론이 가능해졌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사회는 228사건에 대해 좀더 객관적인 이해를 하고 있을까? 역사에 대해 부단히 질문을 제기하면서 이에 관한 인과를 찾아내어 역사의 민낯을 그려내고자 한다.

 

전매제도
  • 타이완성 전매국은 장뇌,식염,담배,술 등의 매매를 독점하며 영업수익은 매우 높았다. 2차 대전 종전 초기에 전매국 내부의 부패와 사리사욕을 챙기는 등의 폐단이 존재하였고 밀수 행위 또한 창궐했는데, 단속원에 대한 재직훈련이 결여되어 사회에서는 바라보는 이들에 대한 인상은 보편적으로 좋지 않았다.
담배매매 검거 충돌사건
  • 전매국 단속원이 타이베이 천마다방 앞에서 불법 담배 판매 여인 린장마이를 검거할 때의 처리 방식이 부단하여 충돌을 야기하였는데 옆에서 구경하던 시민 천원시陳文溪가 단속원의 총에 맞자 민원이 들끓고 사태가 확대되었다.
언론보도
  • 《타이완 신생보》는 행정장관공서의 기관지이다. 2월 27일 담배매매 검거 충돌사건 발생 당일 밤, 민중들이 신문사로 몰려가 사실 보도를 하라고 요구를 했다. 군중의 압력 하에 신문사는 며칠 연속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228사건 관련 소식을 실었다.
총파업
  • 2월 28일, 담배매매검거 충돌사건 발생 다음날, 인명 피해 사건이 해결되지 않자 타이베이 시민들은 가두로 나와 큰소리로 파업파시를 알리자 일부 시민과 상점은 즉각 호응하며 상점 문을 닫아걸었다.
장관공서 총격사건
  • 2월 28일, 분노한 군중들이 가두 행진을 하며 전매국에 항의를 했다. 오후에는 행정장관 천이가 나서서 해결할 것을 청원하러 행정장관공서로 갔는데 2층에 배치된 위병들이 무차별 사격을 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 때문에 충돌 사태는 신속하게 만연되어 타이완 전역의 반항 행동으로 확산되었다.
228사건처리위원회
  • 3월 1일, 타이베이시 참의원, 국민대회 대표, 성 참의원 등이 담배매매 검거 유혈사태 조사위원회를 공동으로 성립하여 행정장관 천이에게 계엄 해제, 체포된 시민의 석방, 군경의 총기 사용 금지 등을 요구하자 천이는 이를 모두 수긍하고 위원회 명칭을 228사건처리위원회로 개명하였다.
정치개혁
  • 228사건처리위원회는 천이에게 32조 처리강령의 정치개혁방안을 제출했다. 이중에는 현.시장과 의회의 민선, 전매국의 폐쇄, 범죄자에 대한 임의적 체포 금지, 언론.출판.집회 자유의 보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라디오방송국
  • 라디오방송은 그 당시 소식을 전파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담배매매 검거 충돌사태가 발생한 후 타이베이 시민은 타이완라디오방송국(현 타이베이228기념관)을 통해 유혈사태 소식을 전파하였으며, 쟈이嘉義라디오방송국도 인근 지역 주민들이 수이상水上공항 항쟁 행동에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방송을 한 바 있다.
계엄 선포
  • 228사건 기간 수 차례 계엄을 실시하였다. 2월 28일 항쟁이 확산되자 천이는 타이베이시에 계엄을 선포했는데, 그 다음날 사건처리위원회의 요구로 계엄을 해제하였다. 3월 9일, 육군 재편 제21사단이 타이완에 도착하자 천이는 타이완 전역의 계엄령을 선포하고 처리위원회의 해산과 신문사 폐쇄 등을 명령했다.
대학살
  • 육군의 재편 제21사단이 지륭基隆항과 가오슝高雄항에서 상륙한 후 군인.경찰.헌병.특수요원들이 무력으로 저항하는 민병이든 평화적으로 개혁을 부르짖는 사회 엘리트이든 가리지 않고 무차별 숙청 및 사살했다.
유화와 숙청
  • 3월 17일, 국방부장 바이충시白崇禧가 타이완으로 건너와 위문 시찰을 했다. 3월 20일, 천이는 《숙청 실시에 따른 민중에 알리는 말》을 공포하고 호구 조사와 무기를 거둬들이는 방식으로 숙청했는데, 이 기간에 체포나 사살된 민중은 대부분 사법재판을 거치지 않았다.
학교
  • 228사건이 전 타이완으로 확산되자 각 학교의 학생들은 치안 유지를 돕거나 일부 사제들은 항쟁 행동에 가담했다. 타이완대학교, 타이완성립 사범학교, 옌핑延平학교, 타이중臺中 사립젠궈建國공업예술직업학교, 쟈이고교, 가오슝제1고교 등 학생이 포함되어 있다.
문학
  • 228사건은 타이완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문학에서도 잘 나타나 <농촌 자위대>, <타이완섬의 피와 한> 등 시민의 자위 반항을 소재로 한 작품이 있으며, 정치의 어두운 면을 묘사한 작가 우줘류吳濁流는 《무화과》, 《타이완 개나리》 등이 있다.
해외 간행물
  • 1950년대부터 일본과 미국 등지의 타이완인들이 매년 기념회를 거행하는 것 외에도 사건 관련 보도와 분석을 진행하였다. 1961년, 《타이완 청년》지는 ‘2·28 특집호’를 펴냈는데, 이는 228사건을 처음으로 완전하게 소개한 글이다.
반체제 잡지
  • 228사건은 민주 자유를 추구하는 역사 논술이 되었다. 1980년대부터는 반체제 잡지에 관련 보도가 출현했다. 예컨대 《전진》, 《심경-深耕》, 《종고라-鐘鼓鑼》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모두 정부에 의해 폐간되었다.
정치 계몽
  • 미국 주타이완 부영사 조지 헨리 카(George Henry Kerr)가 228사건 당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1965년에 출판한 《배반 당한 타이완》에서 그는 타이완인은 스스로의 의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수많은 해외유학생들의 정치적 계몽 서적이 되었고 또한 타이완 독립을 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228 평화의 날
  • 1987년 초, 사건 발생 40주년, 타이완인권촉진회 천융싱陳永興 회장, 리성슝李勝雄 변호사와 《자유시대 주간》지의 창간인 정난룽鄭南榕은 공동으로 ‘228 평화의 날 촉진회’를 발족하고 228사건의 공개 기념, 진상 규명, 재평가를 요구했다.
영화
  • 228사건을 반영한 몇몇 영화 중에 1989년의 《비정성시》에서는 종전 초기의 타이완 사회를 묘사했고, 1999년의 《천마다방》에서는 당시의 문화적 차이와 충돌을 반영했으며, 2005년도의 《228 상흔》에서는 당시 인물의 대화, 역사의 재건 수법으로 사건의 원래 모습을 표현했다.
기념비
  • 첫 기념비는 민간에서 발기하여 1989년에 쟈이시 미퉈彌陀로에 세워졌다. 첫 국가기념비는 1995년에 타이베이시 228평화공원에 낙성되었는데 희생자 유가족들이 아직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항의하여 1997년도에서야 비문을 새겼다.
국가원수의 사과
  • 1995년, 228사건 48주년을 맞이하여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은 228기념비 낙성식에서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정부를 대표하여 228사건 피해 가족과 전국민을 향해 사과하였다.
사건 전담팀
  • 1991년 행정원 228사건 전담팀이 성립되어 사건의 조사 연구를 담당하였다. 정치 금기로 간주되었고 자료가 흩어져있어서 팀원들은 각지로 파견되어 자료 수집과 취재를 진행했다. 1992년에 《228사건 연구보고》가 공포되었는데 이는 228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제출한 보고이다.
평화기념일
  • 1995년 처음으로 매년 2월 28일을 평화기념일로 제정하였다. 초기에는 기념만 하였다가 1997년도부터는 국정공휴일로 정하였다.
골든타임 드라마
  • 《타이완 백합》은 2004년에 방영된, 228사건을 기점으로 타이완인들이 이 사건 이후인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에 겪은 백색공포에 대해 묘사한 드라마이다.
보상에서 배상으로
  • 1995년에 《228사건 처리 및 보상 조례》를 제정 및 반포하였고 아울러 재단법인 228사건기념기금회를 설립하였으며, 2007년에는 《228사건 처리 및 배상 조례》로 이름을 바로 잡고,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중이다.
국가기념관
  • 2011년에 개관한 228국가기념관은 1946년도에는 타이완성 참의회가 소재했던 곳이며, 228사건 발생 이후 여러 명의 성참의원들이 실종되거나 지명수배되는 등의 수난을 겪은 중요한 역사 현장 중의 하나이다.

 

교과서 속의 역사

역사 교과서는 역사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예전에 교과서는 일률적으로 국립편역관에서 펴냈는데, 완전한 타이완 역사를 가르치지도 못했고 각급 교재에는 228사건을 언급하지도 않았었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 일련의 민주화운동이 일면서 정치사회의 분위기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고, 따라서 1990년 고교 역사 교과서에는 매우 짧은 58글자로 서술한 최초의 228사건 교재가 출현했다. 의도적으로 잊혀진 역사를 되찾는 것은 228사건의 기억을 공개하는 첫걸음이다. 그후 1995년 교육부의 일강다본(一綱多本: 하나의 과정 표준 하에 여러 출판사에서 교재 편찬 및 발행하는 교과서)정책이 확립되면서 각급 학교에서는 국립편역관 이외의 기타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사건의 윤곽도 교육을 통해 차세대들에게 전파될 수 있게 되었다. 고교 역사교과서를 통해 한걸음 한걸음 과거를 돌이켜 보며 역사를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1947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2월 28일, 228사건 폭발.
1949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5월 20일, 계엄 실시.
1962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1962년 교과 과정 표준-교육부가 공포한 <중고교 교과 과정 표준>에서는 역사교과서는 청년들의 민족 부흥의 책임을 시사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 타이완의 광복과 중국 판도에 재편성된 부분을 언급했을 뿐 228사건에 대해서는 수록하지 않았다.
1971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10월 25일, 중화민국 유엔에서 탈퇴함.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1971년 교과 과정 표준-1968년을 기해 9년 국민의무교육이 실시됨에 따라 교육부는 <고교 교과 과정 표준>을 개정하였으나 여전히 228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다만 당시 국제정세를 감안해 중화민국 판도에 재편되었다고 수록했다.
1983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1983년 교과 과정 표준-《고등학교법》에 맞춰 교육부는 <고교 교과 과정 표준 및 실시방법>을 개정 및 공포하였으나 228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언급하지 않았다.
1987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2월 28일, 228평화의 날 촉진회 발족, 처음으로 228이란 명의로 가두 행진을 함. 7월 15일, 계엄 해제.
1988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리덩후이李登輝 제7대 총통은 처음으로 228사건에 대한 관점을 발표함. 타이완성 문헌회는 타이완 전역을 방문하여 구술역사를 취재함.
1989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타이완 최초로 민간에서 건설한 228기념비가 쟈이嘉義시 미퉈彌陀로에 낙성됨.
1990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민간에서 역사의 그늘에서 헤쳐나오고자 하는 기대에 호응하기 위해, 입법원은 처음으로 228사건 피해자를 위해 기립 묵념하며 애도를 표함. 3월 학생운동(들백합 학생운동)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계엄 해제 전후의 민주운동 및 1990년대에 정부가 처음으로 228사건에 대해 호응한 데에 힘입어 228사건이 해금되고 고교 교재에 처음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내용은 총 58글자이다.
1991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제1기 국민대회에서 ‘중화민국 헌법’ 개정 조문 및 ‘국가동란시기 임시조관’ 폐지를 통과함. 리덩후이 총통 재임기간 행정원에 228사건 전담팀을 성립함.
1992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행정원에서 ‘228사건 연구 보고’를 공포함.
1993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1983년 교과 과정 표준-《228사건 연구 보고》가 공포된 후 교과서에는 228사건 이전의 타이완 정세, 무고한 시민이 연루되어 피해당했다는 사실과 행정원에서는 228사건 전담팀을 성립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1994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스바오時報문화출판사에서 504쪽의 행정원 ‘228사건 연구보고’를 출판함.
1995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중앙정부의 228기념비(비문이 새겨지지 않음)가 타이베이 신공원에 낙성되어, 리덩후이 총통은 정부를 대표하여 처음으로 228사건 희생자 가족 및 전국민을 향해 사과함. 입법원은 ‘228사건 처리 및 보상 조례’를 통과하고 매년 2월 28일을 평화기념일(공휴일은 아님)로 제정함. 행정원은 재단법인 228사건기념기금회를 성립, 관련 보상 신청의 수리 및 심사 발급, 기념활동과 진상 조사 등을 책임짐.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연구보고가 출판되고 총통이 사과하며 보상 조례가 통과되는 등의 변화로 교과서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새로 증가시킨 것 외에도 2차 대전 종전 후 초기의 타이완성 행정장관공서의 특수 군·정 일원화 체제와 조국의 품으로 돌아간 타이완 동포들이 크게 실망했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아울러 교육부는 ‘일강다본’ 방식을 확인하고 역사 교육은 정당과 국가가 결탁하는 구도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6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타이베이 신공원을 228평화공원으로 개명함.
1997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228사건 50주년을 기해 평화기념일을 국정공휴일로 정하고 아울러 타이베이 228기념관을 개관함.
1998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계엄시기에 부당하게 반란 및 간첩으로 심판 받은 안건에 대한 보상 조례》가 공포됨.
1999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1999 교과 과정-1995년 <고교 역사 교과 과정 표준>의 ‘일강다본’ 원칙에 입각하여 편찬한 것으로, 이는 계엄 해제 이후의 첫 개정판 교과 과정이다. 2월 27일 불법담배매매 단속 충돌이 경찰과 시민 간의 대립을 야기하였고, 사건 다음날 장관공서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228사건이 폭발하게 된 것과, 사건 수습에 있어 통치당국에서 숙청,체포,부당한 심판 등의 부당한 처리방식을 설명하고, 천이, 커위안펀(柯遠芬), 펑멍지 (彭孟緝)등 실책 관원을 언급했다.
2000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교육부는 인권교육위원회를 성립함.
2003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교육부는 <보통 고등학교 교과 과정 잠정 시행 요강>초안을 공포했다. 타이완사가 따로 분리되어 편찬되었고, 명대 말기 이후의 중국사(중화민국사 포함) 부분은 근대 세계사에 편성되었으며, 타이완의 지위는 아직 합의된 논점이 없음을 삽입하여 커다란 논쟁을 일으켜, 2004년 11월로 늦춰져 인터넷에 공고를 하게 되었다.
2005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교육부가 개정한 <보통 고등학교 교과 과정 잠정 시행 요강>을 발표, 다음해에 적용하였다.
    2006 잠정 교과 과정-228사건에 대한 설명이 더욱 상세해졌다. 종전 후 초기의 타이완과 중국 간의 문화적 차이를 처음으로 언급하였고, 당국은 언어를 문제 삼아 중국출신의 고위급 관원 수와 비례가 현저히 높았다는 걸 지적했으며, 사건 피해자 이름(왕티엔덩-王添灯)을 밝히기도 했다.
2006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재단법인 228사건 기념기금회는 《228사건 책임 귀속 연구보고》를 출판, 보고에서는 228의 원흉은 장제스蔣介石임을 명확히 지적함.
2011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2012 교과 과정-정치,경제,사회 문화 등 방면에서 종전 후 초기의 타이완인의 기대와 실망에 대해 설명했다. 배경, 도화선, 정치 교섭, 무장 진압에서부터 사건의 파급 영향과 선후책 등에 대해서 순서대로 사건 발전 면모를 서술했다.
    행정원이 인가한 12년 국민기본교육 실시계획이 2014년 8월을 기해 실시하도록 정했다. 이 교과 과정은 2006년 잠정 과정 이래의 교육개혁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타이완을 주체로 한 사관을 중국 위주로 변경하여 역사 논술의 맥락을 변화시켰다.
2012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행정원은 <228사건 피해 교육문화기구 복원 방법>을 발표함.
2013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대학생들이 제1회 공생음악절을 발기함.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교육부는 체제 외의 검열소조의 성립을 공고하여 ‘과강미조’(課綱微調:교과 과정의 미세한 조정)의 시작을 고하고 다음해 1월에 심사 절차를 마쳤다.
2014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해협양안 서비스무역협의’를 항의하는 대학생과 시민단체가 발기한 318운동(해바라기 학생운동)이 약 1개월 동안 지속됨.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교육부는 12년 국민기본교육 실시에 발 맞추고 교육 현장 수요를 즉시 호응한다는 이유로 고교 국문 및 사회 영역의 ‘과강미조’를 통과하고 다음 달에 공포 및 2015학년도부터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12년 국민기본교육 실시.
2015
  • 타이완 근대 약사(略史)/교과 내용과 절차 쟁의로 인해 고교 교과서 개정 반대 운동이 약 3개월 동안 지속됨.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고교 ‘과강미조’ 반대운동-‘과강미조’에 순응하여 228사건은 고립 사건으로 서술되었다. 이는 2012 교과 과정에서 민주정치에 예속되어 2차 대전 종전 이후의 타이완 정치의 변천을 서술한 것과 달랐다. 학자들은 228사건이 고립되고 그 맥락을 잃게 된 것은 의도적으로 권위 통치와는 별개의 문제로 정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6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교육부는 ‘과강미조’ 버전을 폐지하고 2016학년도부터는 2012 교과 과정을 회복 실시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2017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교육부가 개정한 <12년 국민기본교육 교과 과정 요강 총강>을 2019학년도부터 실시하며, 각급 교육 단계에 따라 해마다 실시한다고 선포했다.
2019
  • 고교 역사는 어떻게 가르쳤나/2019 교과 과정-<12년 국민기본교육 교과과정 요강>을 정식으로 실시함.

과거에 각급 교육 과정은 ‘교과 과정 표준’ 규범에 의거하여 실시되었고 수 차례 개정된 바 있다. 9년 일관과정의 기획과 실시에 맞춰서 고교 과정도 변화하게 되었으며 ‘교과 과정 표준’이 ‘교과 과정 요강’으로 대체되었고 국가 차원의 교과 과정 형식과 실질적인 면에서 막대한 변혁을 끌어냈다. 1995년 고교 교과 과정 표준 개정 위원회는 ‘사회의 변혁 발전을 감안하여 개방되고 다원화한 사회 수요에 배합한다’를 목적으로 교과 과정 개정 원칙을 마련했다. 그후 고교 교과 과정은 비록 수 차례의 개정을 거쳤고 사관이나 단어의 선택 등에 쟁의가 존재하였으나 독립적 사고력과 분석력을 배양한다는 방향으로 매진해 나가면서 역사 교과서에서의 228사건에 대한 묘사와 소개가 점차 완전해질 수 있었고 청년 학생들이 타이완 역사의 상흔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미래육성계획

역사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교과서는 역사를 이해하는 첫걸음인데 미래 세대들이 진상 파악에 대한 호기심을 갖도록 어떻게 유도할 수 있을지, 자신의 연령에 속한 컬러 스티커로 미래 세대들이 역사 과제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곳에 붙이세요.
* 20세 이하 - 분홍색, 20-40세 - 초록색, 40-60세 - 파란색, 60세 이상 - 노란색

  • 기타 추천 도서 일람표 제공.
  • 예를 들어 사건의 인과 관계를 방증함.
  • 구술 자료를 인용하여 역사적 분위기를 조성함.
  • 더 많은 희생자 및 가족들의 이야기를 보충함.

 

신세대의 용기와 추구

역사는 과거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각종 형식의 창작을 통해 각기 다른 세대가 주시하는 역사의 진실을 반영해 줄 수도 있다. 1953년 차이루이위에蔡瑞月의 무용 《꼭두각시의 출정》은 명주실 끈으로 무용수를 조종하는 표현 수법으로 국민당정부가 젊은 어머니를 박해한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사실을 반영한 작품이다. 나중에 계엄이 해제된 후 타이완의 문예계는 우줘류吳濁流의 소설 《타이완 개나리》, 허우샤오시엔侯孝賢의 영화 《비정성시》 등의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해 준 계기가 되었고, 점진적으로 성숙해진 역사에 대한 시각은 작가들로 하여금 각자 그들의 시각에서 본 것을 기록하였는데 여기에는 문헌을 통해 소설 만화를 창작하거나 대규모 연구를 거쳐 애니메이션 영상을 제작하였으며, 인터넷을 매개로 작품에 대한 많은 토론과 재고찰을 이끌어 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228사건을 주제로 한 일부 작품을 통해 작가들이 어떻게 역사의 과제를 해석하는지를 만나볼 수 있다.


소설
리앙 〈색조 화장, 피의 제물〉, 1996

〈베이강 향로에는 누구나 향을 꽂는다〉에 수록된 작품이다. 228사건 기념 활동을 주축으로 하며 성별인정 등의 의제도 언급한 소설로 상징 및 은유법으로 228사건으로 무수한 사상자의 슬픔과 원한을 묘사했다. 작품이 발표될 때 작가는 이러한 창작은 타인의 호감을 얻기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피압박이란 의제는 영원한 것’임을 알리고 싶어 끝까지 견지하여 이 주제의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2011년 오스트리아 린츠 주립극장 무용단 예술감독 린메이홍林美虹이 개편한 <신부 화장> 무용작품은 가오슝 웨이우잉衛武營국가예술문화센터에서 2019년에 공연되었다.



양샤오나 〈녹도〉, 2016

이야기는 1947년 2월 28일부터 시작된다. 여자주인공은 차이 씨 의사선생 일가 3대를 개인의 경력과 복잡한 감정 모두 1인칭의 시각에서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한단락 넘길 때마다 작가는 전지적 관점으로 역사의 진상을 서술하며 당시의 개인이 발견하지 못했던 어두운 역사 사실을 전부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자주인공이 결혼으로 미국에 가면서 특수요원의 위협과 감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녀는 228사건으로 투옥한 정치범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책 이름이 <녹도>라는 것도 이중적 정치의 의미를 은유하고 있다. 즉 정치범을 가둬놓는 녹도 형무소와 백색 공포를 의미한다. 오늘날에 이르러 228사건은 여전히 수많은 가정에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있다.


린지엔윈 《거스르다-忤: 반역 3부작, 에피소드 1》, 2016

《거스르다》는 228사건 발발 전후의 사회 분위기의 차이점에 초점을 두었다. 핑둥 屏東 완단萬丹지방 한 가족의 취산이합의 희비가 줄거리의 주축이 되며, 식민과 이민의 이야기를 보조로 하여 책 속 인물들의 정권의 전이와 압박 아래서의 심리적 전환을 표현했다. 일식 고등교육을 받은 역할 설정으로 일의 경과를 서술하는 축선으로 백색공포 시대의 재일 타이완독립운동을 맞물려 당시 타이완인이 적극적으로 생활의 기본 권리와 존엄을 쟁취하기 위하여 희생을 각오한 사실을 묘사했다. 책 속의 대화는 우아한 타이완어로 표현하여 타이완인의 정체성 의제를 암시하고 있다.


커중밍, 《천청퍼의 암호》, 2018

화가 천청퍼(陳澄波, 1895-1947)의 신세를 주축으로 하여 이야기는 남녀 2인이 그림 복원 작업에서부터 펼쳐나간다. 그들은 천청퍼가 경험한 일본 유학 시기 사상 계몽, 그의 친구가 사회주의 사상 선양 등 시대적 변화, 천청퍼 시대의 사람들이 종전 후 급변하는 정치 정세로 인해 직면한 곤경과 선택을 통해 당시 타이완인이 문화를 추구하고 국적의 정체성에 대한 방황을 인식하게 된다. 창작을 통해 사건의 희생자들이 고통을 감내하는 용기를 기록하고자 한 작품이다.


음악

싸닉 밴드, 〈어둠 속의 무덕전〉, 2014
〈우뉴란 마하칼라〉, 2018

〈어둠 속의 무덕전〉은 첫 민요앨범 〈빼앗긴 천년〉에 수록되었다. 주인공이 2차 대전으로 먼 남양으로 건너가 비록 전장에서는 고향에 살아서 돌아왔으나 국민당정부의 권위주의 통치 하에 일본 황민으로 지목되어 총살 당한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이 또한 그 당시 수많은 타이완인이 대면했던 228사건과 백색공포의 실화이자 타이완인은 자주적일 수 없었던 운명을 은유했다. 무덕전은 푸리埔里에 있는 무덕전으로 1937년 난터우南投군역소郡役所가 건설한 곳이다. 228사건 당시 27부대가 무덕전에 지휘부를 설치하였는데 후에는 국군과 우뉴란 전쟁이 벌어졌다.

〈우뉴란 마하칼라-烏牛欄大護法〉는 앨범 《정치》에 수록되었으며 228사건의 우뉴란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27부대는 우뉴란 구름다리의 지리적 우세를 기반으로 40인 부대로 700인의 국민당군에 대항하여 적군에 중대한 타격을 가했다. 하지만 마지막 두 갈래가 적에 공격을 받으며 탄약도 바닥이 나고 지원도 두절된 상태에서 무기를 숨긴 후 해산하였다. 싸닉 밴드는 이 앨범을 발행하기 전에 6팀의 음악인들을 초청해 각자 다른 음악 스타일로 해석하도록 하여 SNS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우뉴란 전쟁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봉사, 〈인권 풍경〉, 2016

<인권 풍경>은 ‘노동봉사’의 첫 창작으로 과거 타이완의 변화를 위해 희생하며 가두로 나섰던 사회운동가들에게 경의를 표한 음악이다. 노래는 228사건에서부터 1979년도의 차오터우橋頭사건과 미려도(포르모사)사건 및 근대 민권 운동 등 가오슝高雄지방에서 일어났던 주요 사건을 표현하고 있다. 가사의 시작 부분에서는 228사건의 불법담배매매 단속 충돌, 평화적 담판, 주둔군의 진압, 학생의 자위대 조직 등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였으며, 후렴 부분에서는 ‘잊지 말아라’라는 가사를 계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민주의 길에는 수많은 선열 선배들이 앞에서 길을 열며 정부에 대항하여, 지금의 젊은이들이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고, 쓰고 싶은 작품을 쓸수 있게 된 것을 청중들이 잊지 말고 기억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저우딩방, ‘피가 흐르는 상처’, 2019

저우딩방이 각본,연주,노래를 도맡은 장편 서사시 형식의 염가(唸歌:타이완식 판소리) 작품으로 1947년 228사건의 전말을 서술하고 있다. 1945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타이완인들이 귀향한 시기를 시작하여 전후 타이완 사회의 정황과 인민의 심리적 변화, 그리고 사건의 발발과 천이가 지원군을 요청하여 대학살을 단행한 것, 27부대가 무장 항쟁을 진행한 사건들을 묘사했다. 앨범의 타이틀은 ‘피가 흐르는 상처’로 사건이 이미 70년 이상 흘렀어도 타이완인이 입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상징하고 있다. 앨범은 서시, 타이완 판소리 서막, EP1 일본인(개)이 나가니 중국인(돼지)이 들어왔네 - 조국을 맞이하다, EP2 안개 낀 섬, EP3 피가 흐르는 상처, EP4 용감한 타이완 혼, 타이완 판소리 종막으로 이뤄져 있다.


애니메이션
중화문화총회x타이완바 《과거 청산》 EP1, 2019

2019년 문화총회에서 이치를 말해주는 테마 애니메이션을 내놓았다. 《과거 청산》은 애니메이션 형식을 통해 타이완의 청년과 대중들이 타이완에서 일어난 역사 사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난 날 사회대중이 소홀히 했던 이야기에 대해 돌이켜 사색하도록 한 작품이다. 시리즈는 총 3편으로 ‘진상, 귀책, 재평가’의 3가지 중요한 임무를 부각시켰다. 객관적 시각에서 정반합의 논술을 진행하여 현재 타이완이 과거청산을 대하는 상황을 역사 자료를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각종 행위의 숨겨진 동기를 말해주면서 과거청산의 실천은 희생자와 그들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함께 치유하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과거 청산》 시리즈 EP1은 진상 규명에 관한 과거 문건의 기밀 해제, 권위의 상징물 철거, 가해 체계 관련 연구이며, 《과거 청산》 시리즈 EP2는 책임을 묻는 건 단지 귀책을 명확히 하려는 것을 시청자에게 이해를 시키는 것이고, 《과거 청산》 시리즈 EP3의 최종회에서는 희생자에 대한 재평가와 가족을 위한 힐링에 초점을 맞추어 피해자가 겪었고 압박 받은 사회 정황에 대해 감정 이입하여,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더욱이 치유해야 하는 중요성을 부각시킨 영상이다.


만화
롼메이주x장루이팅, 《만화 228》, 2005

롼메이주 기획 구성에 장루이팅 그림의 국내 228사건을 주제로 한 첫 번째 만화 작품이다. 롼메이주는 228사건은 잊어서는 안 될 타이완의 역사적 비극으로 흑백 만화로 표현하여 더욱 더 많은 젊은이들이 역사를 이해하기를 희망했다. 이 책은 총 2집이며, 1집에서는 사건 묘사에 중점을 두었고, 간단한 선과 생동하는 화면을 이용해 글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전반적으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2집은 롼쟈오르阮朝日, 왕티안덩王添灯, 탕더장湯德章 등 희생자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당시 국민당정부가 전면 진압을 한 폭력행위를 보여주고 있다.


두푸안, 《뜨거운 불 속의 228》, 2012

만화 형식으로 독자들을 사건이 발생한 시대로 인도하며 228사건 발발 인과를 서술하고 섬세한 필법으로 1940년대의 타이완을 재현하여 당시 타이완 각지의 사회 정황과 이어서 도래한 국민당정부의 만횡과 진압 장면을 그렸다. 또한 타이완인이 당시에 전제 정권에 항거하는 노력과 결심을 지상에 싣고 독자들이 직접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한 작품이다. 학자들은 만약 역사의 문화 관점에서 바라볼 경우 228사건은 두 개의 다른 사회 문화 간의 충돌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이 같은 역사적 의의를 명확하게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린리징, 《나의 청춘, 나의 포르모사》, 2012

자전적 만화로 상·하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권은 계엄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여준 ‘새 혀를 꿰매어 달다’라는 테마로, 혀를 잘라내고 새 혀를 꿰맸다며 모어를 말살 당했음을 상징하고, 언어와 문화가 대체되는 현실에 대한 초조함을 표현했다. 하권은 ‘악몽에서 깨어나다’로 타이베이 제1여고 시기부터, 즉 1980년대 말, 계엄 해제와 신문출판의 해금, 정당 설립의 개방이라는 격동의 사회였을 때 정당과 정부가 연계된 역사 교육과 228사건 진상이 사라진 현상을 부각시켰다. 이 책에서는 단계별 성장 기억 속의 문화적 충돌과 자아 변증을 되새기며 정치적으로 개체가 각성하는 과정을 표현했는데 이 또한 타이완인이 공감하는 의제이다.


Tseng Feng, ‘위대하며 아름다운 씨앗: 그림으로 보는 228 민중의 힘’, 2019

2018년, 작가와 친구는 한 달 내내 지속적으로 SNS를 통해 ‘228 시리즈 삽화’를 발표할 것을 기획하였는데, 의외로 인터넷에서 설전을 일으키면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 책 속의 그림과 글은 독자들을 228사건이 발생했던 시간과 공간으로 인도하여 일부 군중들이 용감하게 나서서 항거하고 이 섬을 위해 목숨을 바쳐, 그들은 위대하며 아름다운 씨앗이 되었고, 뿌리를 내려 꽃으로 피어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러한 씨앗은 계속 다시 전파함을 시사했다. 역사는 우리와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며, 누구든 위대하며 아름다운 씨앗이 될 수 있고 시대가 흘러도 곳곳에서 꽃을 피울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게임
스터랑, 《잔혹한 228》, 2019

작가는 반항이야말로 수백 년 타이완 역사의 주축이며 이중 228사건은 특히 더 그렇다며, 그래서 게임 제작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이해하도록 했다. 게이머는 네덜란드 시대에 유럽에서 타이완으로 이민 온 여자 흡혈귀를 롤 플레잉하는 게임으로 시대 배경에서도 타이완인의 포용적 민족성을 나타냈다. 매 단계마다의 마왕은 228사건 당시 일부 중국대륙 출신자들의 생각을 대표하는데, 꼭 어느 쪽이 정의이고 어느 쪽이 사악하다는 절대성이 아닌 쌍방의 입장 차이로 인한 대립을 통해 게이머들이 228 사건의 인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 작품은 2019년부터 인터넷에서 테스트 진행 기간 내려받아 즐길 수 있으며 오는 2020년도에 정식 버전을 출시할 예정이다.

 

그후의 우리는

국민들이 228사건, 민주, 인권 등 의제에 대해 점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을 때, 우리는 과거에 기억으로만 묻어뒀던 이야기를 서술하므로써 미래 세대들이 역사를 이해하는 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 역사는 한 사람이 앞으로 100보 전진하는 게 아니라 100명이 앞으로 한 발 내딛는 것이며, 역사의 진실에 대해 관심 갖는 사람이 많을수록 과거의 상처 치유에 더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고, 질의와 공감의 양극 관점의 대화는 역사 논술을 재고찰하는 매개가 될 것이다. 오늘날에 태어난 당신의 228사건에 대한 관점을 듣고 싶다.

 

독자의 소리 투고

아래의 질문을 자세히 읽고 생각해 보십시오. 점선을 따라 질문 투표용지를 잘라 질문 항목 번호에 맞춰 전시장 내 ‘동의하다/동의하지 않다’ 투명 아크릴 상자에 투입해 주십시오. 우리 함께 역사를 해설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됩시다.

  • 질문1: 잘못은 용서가 되지만 역사의 상처는 잊어서는 안 된다. (동의하다/동의하지 않다)
  • 질문2: 228에 대해 우리는 앞을 바라봐야지 뒤돌아 볼 필요는 없다. (동의하다/동의하지 않다)
  • 질문3: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추궁해야만 화해가 시작될 수 있다. (동의하다/동의하지 않다)

 

228을 재론하다

228사건은 근대 타이완 역사상의 커다란 비극입니다. 미래에도 권위주의가 재현하거나 국가의 폭력이 자행될 가능성도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이를 직면해야 할까요? 귀하의 관점을 말씀해 보십시오.